삼가 소천하신 존경하는 민헌기 교수님을
애도하는 영결식에서 선생님을 회상해 봅니다.
나는 60여 년간을 선생님과 교류하면서 많은 것을 함께 체험하였습니다.
선생님은 1960년대 우리나라 후진 의학을 선도하시며, 현대의학의 개념을 주입하시고 과도하게 세분, 전문화되는 임상의학의 벽을 허물고, 통찰하는 능력을 육성하여야 한다는 중요한 의학 교육의 목적을 설정하시고 실천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높은 도덕적, 윤리적 잠재력을 소유하고 계셨으며, 대부분의 범인(凡人)은 가까이에서 대면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인성을 소유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귀족적이면서도 늘 온화하신 선비였습니다. 선생님은 음악과 문학, 철학의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계셨으며, 일상생활에 그 화려한 윤기(潤氣)가 항상 녹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의학에 많은 업적과 제자를 배출하시고 홀연히 떠나시는 선생님, 다시 뵙고 싶습니다.
어깨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쉬십시오.
선생님의 설정하신 과제들은 후배, 제자들이 기억하고 따르겠습니다.
선생님이 사랑하고 아끼시던 가족들, 특히 이운경 여사님을 외롭지 않게 하시고, 선생님의 가족 모두에게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2021년 3월 8일 최영길 배상.
‘학문의 즐거움과 그 실천은 끝이 없다
- 민헌기 선생님을 추모하며’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생님, 갑작스러운 비보에, 비탄에 잠긴 제자들, 선생님을 차마 보내드리지 못하고, 호곡(號哭)합니다.
학문과 인술의 소명을 완수하시고 떠나가신 선생님, 선생님 품에서 배우고 익히던 시간이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자기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나만을 위해서 보다 남을 위해서 일하는 게 더 가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라시던 선생님.
내분비대사학, 당뇨병학을 비롯한 의학의 넓이와 깊이를 건조한 단어의 나열이 아닌 활력 넘치는 역동으로 깨우쳐주시던 선생님의 강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학문의 즐거움과 그 실천은 끝이 없다.”고 하시던 선생님 말씀도 귀에 쟁쟁합니다.
사변(思辨)을 넘어선 참된 진리를 명징하게 일깨워주시던 선생님을 이제 더 이상 뵐 수 없다니 슬프고 허전합니다.
선생님, 오늘도 환자 진료를 하면서, 선생님의 너그러우신 음성이 간간이 들려 멈칫하곤 했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대할 때에 명심할 것은 그를 하나의 증례로만 생각하지 말고, 고통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한 인간으로 파악해야 한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전형적 인간관계이며, 이것 없이는 의학도 의술도 성립되지 않는다.‘라고 강조하시던 선생님의 음성.
진료실에 ‘최신 의학서적’을 들고 오셔서, 진찰 중에, 처방 중에 가장 적절한 진단과 치료법을 반드시 확인하시던 선생님. 뵙고 싶습니다.
뵙고,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지 않으면 안되는 이 메마른 세상에서, 참되고 선한 인술을 더 배우고 싶습니다.
따스하신 선생님의 지혜를 듣고 싶습니다.
인자하신 선생님, 선생님은 올바른 삶의 면면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지나친 비약을 타이르시고, “자신만의 행복은 결코 온전한 행복이 될 수 없으며, 주변 사람들이 다 함께 행복해야 진정한 행복임을, 또한, 현실이 아무리 부조리하더라도, 높은 이상, 그곳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선생님, 모든 성취와 영광을 의연하신 뒷짐으로 감추신 채 묵묵히 서 계시던 선생님. 제자들의 화려한 겉치장이 아니라, 안으로 영글어 익어가는 진실한 고갱이를 아껴주시던 선생님. 세계학회 회장, 대통령 주치의 등의 수식어를 다 내려놓고 선생님을 불러봅니다.
선생님, 민헌기 선생님, 저희를 이렇게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저희 제자 일동, 선생님이 행하시고 남기신 뜻을 잊지 않고, 더 열심히 학문에 몰두하겠습니다.
더 선하게 의술을 베풀겠습니다. 더 신실하게 그리고 더 끈기 있게 살아가겠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 삼월의 이른 봄입니다.
학문과, 인술과, 제자 교육에 쉼이 없으셨던 선생님, 이승의 번잡함 다 잊으시고 편히 쉬십시오.
선생님, 존경합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2021년 3월 8일 서울대학병원 내분비대사내과 동문회 제자일동, 유형준 배상.